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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심령 스팟 - 이코마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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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심령 스팟 - 이코마 터널




조선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만든 터널로 나라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터널을 말합니다.

예전에 서프라이즈에서 이 곳을 방송한 적이 있어서 지금은 아시는 분들도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코마의 지리적 중요성으로는 이 터널은 일본의 나라와 오사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요한 터널이라고 합니다..

이 터널이 있기전 나라와 오사카는 이코마산때문에 교통이 단절되어 있었는데. 강제 징용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가며 만든 터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폐쇄되고 새로 뚫은 터널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코마 터널은 제일 먼저 1912년 개통되어 1964년 폐지된 구 터널과, 이후 1964년, 1984년에 각각 새로 개통한 신 터널 2개로 나누어집니다.

심령 스팟 으로 알려진 곳은 바로 구 이코마 터널과 제 2 신 이코마 터널입니다.



좀 검색을 해보니 공사완료 년도가 조금씩 차이가 있는 내용이 있어서 조금 틀리더라도 양해해주세요....



구 이코마 터널


구 이코마 터널은 일본에 5대 건설 업체 중에 하나인 오마야시구미가 만든 터널이며 감독관이 조선인들을 잔혹하게 학대를 하여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고 1999년에 살인당한 시체가 발견되어서 사람들에 불안이 커지자 일본정부는 이터널을 패쇄하였고 구 이코마 터널에는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에 영혼이 떠돌아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제 1 신 이코마 터널


기존 이코마 터널에서 사고가 잦고, 입구가 매우 협소한 관계로 1964년 긴테쓰나라선을 건설하면서 신설했습니다.

길이 3,494m로 구 이코마 터널보다 조금 더 길며, 오사카 쪽은 터널을 신설하여 신이시키리역을 신설하였으며, 나라 방면은 기존 이코마 터널의 좌측에 입구를 건설했고 터널 입구에서 두 노선이 분기합니다.

한노선은 신이시리역방향 한노선은 오사카방향입니다.


그리고 1964년 기존터널에서 일어났던 사고가 이곳에서 일어났다 만든지 얼마 안되 기존 터널처럼 이곳 제1이코마터널을 지나던 열차에서 화제가 발생했고 1965년 터널안을 달리던 급행열차가 폭발했고 1966년에는 이곳 터널안을 달리던 열차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오사카까지 폭주후 폭주하던 열차앞에 있던열차 후미부분에 충돌했습니다.

그 후 같은해 6월 이곳 제1 이코마 터널을폐쇄시켰다가 같은해 7월 다시 열차가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폐쇄 시킨 가장큰이유는 사고가 잦았고 이곳을만든 조선인을 데리공와 노동을 시켰는데 일을안하는 노동자들은 일본감독이 잔혹하게 학대했습니.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그터널 안을 떠돌아니며 터널안을 지나가던 열차를 사고나게 만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2 신 이코마 터널


이후 제 1 신 이코마 터널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기존 1964년 폐쇄한 구 이코마 터널을 일부 활용하여 긴테쓰게이한나선의 터널로 건설했습니다. 길이 3,494m이며, 나라 쪽 입구는 구 이코마 터널을 활용하였으며, 이렇게 연결되면서로 심령 스팟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식 명칭은 폐쇄된 구 터널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이코마 터널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1 터널과는 달리 제3궤조 방식으로 운영되는 철도이기 때문에, 별도의 전차선이 없답니다.





논란


이 터널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에서 데려온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건설하였습니다.

이코마 터널은 일본 5대 건설 업체 오마야시구미가 만든 터널로 당시 먼 오사카와 나라 지역을 왕래할 방법이 없어서 만든게된 터널이 이코마터널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코마 터널을 건설하기전 일본 정부와 건설회사는 지반이 약하고 물이 많아 터널공사가 불가능했던 이코마산이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에서는 이익을 위해서 무리한 터널공사를 강행 합니다








이미지 출처:일본 사이트 obayashi


건설 현장에 동원된 조선인들은 낙석 사고로 죽거나, 폭행과 같은 가혹 행위를 당하였으며, '사람의 피가 많이 섞여야 공사가 성공한다'는 미신을 믿던 일본인 감독관들에게 잔인하게 학살 당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원래 이코마 터널 구간이 강삭선(Cable Car) 건설 방식까지 검토했을 정도로 험난한 구간이어서 1913년 1월 26일에는 낙반 사고가 발생해 일을 하던 조선인 노동자 152명 매몰 및 사망자 20명이라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습니다.



또 조선인들이 도망갈것을 염두해 공사현장에서 한 발짝도 나올수 없게 갱 입구를 봉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둬두면서 단 한끼의 식사만 제공을 했으며 잠잘 곳이 없어서 공사자재로 바람막이를 하고 버텄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갱의 천장과 암벽이 무너져 수백명이 매몰이 되고 많은 사상자가 나왔지만 건설회사는 방치를 해두었고 매몰된 사람들은 터널에 매장해 버렸다고 합니다.


조선인들이 항의하면 끌고 가서 구타를 하고 호수에 산채로 버렸으며 이 당시 일본 건설업계에서 돌던 얘기라는데


건설현장에 피를 뿌려야 건물이 튼튼해진다는 속설을 믿었던 일본인들은 이유도 없이 조선인들을 죽이고 조선인들의 피를 건설현장에 뿌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 부분은 정말인지 저는 확인이 어렵더라고요... 이런 생각 자체가 끔직합니다.)


1911년 6월에 시작한 이코마 터널 공사는 조선인들의 참혹한 강제노동으로 1914년 3월에 완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33개월 만에 개통이 되지만 이 이코마 터널을 완공하기 위해서 많은 조선인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


이 외에 터널 관련 사건 사고로는


1946년 4월 16일 9시 30분 쯤 터널 통과를 하던 열차의 사고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사망하신분은 27명으로 아주 큰 사건이였지요, 그 후에도


1947년 8월 19일 터널진입과 동시에 폭발하여 40명부상 , 1948년 3월 31일 브레이크 고장으로 부상 289명 사망 29명


등으로 크나큰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터널 안에서 자연인체발화 현상이 자주 일어납니다


발화점을 찾을수가 없었고 사람 몸만 타고 주변 물건은 타지 않는 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특히 이미 사망한 시체도 이 터널 안에서 자연인체발화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데 기이한건 이 현상이 일어날때 목격자는 없고


타다 남은 사체만 있다든지 사체만 전부 발화했다고 하네요.


사람 몸이 스스로 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과학자나 여러 방면 전문가들이 가설을 세우고 원인을 찾기 위해 몰두했지만


뚜렷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고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상황만 발생했습니다.


터널 완공 후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귀신을 목격한다는 괴소문이 퍼진 이후 갖가지 사고가 발생하자


결국 신 이코마 터널이 완공된 직후  구 이모카 터널은 폐쇄되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유명 심령스팟으로 알려졌습니다.




터널 옆에는 조선인들이 세운 보덕사가 있으며 사찰내에 1977년 긴키 닛폰 철도와 지역인사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한국인희생자무연불위령비가 있어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일본 건설회사가 직접 지은 위령비와 사찰이라지만 전혀 관리를 하고 있지 않답니다.


이후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자 스미이 작가가 이코마 지역에 살았던 증언자들에게 들었던 얘기로 쓴 다리가 없는 강의 책을 써서 진실을 폭로하게 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코마 터널이 완공이 되자 일어났던 모든 사건과 일들을 감추기 위해서 모두 살해했다는 증언과 귀신 목격담.귀신소리.초자연적인 현상을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 인부만 쓴게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여성 인부를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목격자에 의하면 벽돌공 인부4명의 여성들이 일하는것을 봤으며 희생당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 강제징용 관련 기업들은 저들의 노동 업무 숙소 업무 관련 기록 일체를 공개하지 않고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반성의 기색이 없는것이죠.


또 같은 사람의 취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참 나쁜놈들이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1924305957

서프라이즈 2011년 1월9일 447화


출입금지구역에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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